문자도

신信자 문자도는 인간과 인간이
사회에서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인간의 말, 인간관계의 지켜야 할 도리,
또는 올바른 말, 규칙, 언약 등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람 사이에 언약과
말과 규칙을 믿고 지키는 덕목을 말한다.
그래서 ‘신’자 문자도에는 새가 편지를
물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새는 청조 또는 흰기러기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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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조靑鳥는 사람의 얼굴과 새의 몸통을
가진 상상의 새로 중국 고대설화인
서왕모 전설에서 서왕의 출현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청조는 서왕모
설화에 나오는 상사의 새로 얼굴은 사람,
몸은 새의 모습을 한, 이른바
조인鳥人이다. 『한무고사』에 의하면
“칠월 칠일 홀연히 청조가 무제의 궁전에
날아들었는데, 동방삭이 말하기를
이것은 서왕모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리고자 함입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이에 따라서 청조가 물고 있는
서신은 서왕모가 온다는 언약이자 믿음을
상징하는 징표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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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문자도 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문자도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단순화시킨 획의 처리,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색채의
맛이 대단하다. 보라색과 초록색,
그리고 연한 갈색 등이 먹과 어우러져
깊이 있게 가라앉는 중후함과
희한하게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를
거느린다. 기존 문자도를 완전히
자기 식으로 재구성해서 부려놓는
감각이 돋보이는데 이는 자신 있게,
대담하게 그리는 자유에서 연유하는
맛이고 힘이다. 붓질 역시 쓱쓱
문지르고 비벼 만든 데서 연유하는
질감, 표면의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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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 인물은 어눌하면서도 재미있는
표현을 구사해서 이룬 도상,
형태의 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일반적인 문자도에 따르는
도상화의 관례가 무시되고 있으며
글자를 이루는 획, 그 칸에 추상적인
문양과 그림, 글자를 삽입하여
구성해내는 솜씨가 힘 있게 펼쳐지고
있으며 순수한 장식 욕구도 번득인다.



앞의 신信자 문자도와 같은 병풍의
그림이다. 이 그림 역시 동일한
색채의 맛으로 가득하다. 더없이
매혹적인데 그 맛을 온전히
표현할 길이 없다. 묘사의 길을
차단하고 오로지 눈으로,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그림이라 결코 글은
가닿지 못하고 추락한다. 대신
그림이 그 망실을 구원한다. 마주보는
두 마리 새의 묘사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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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을 이런 식으로 추려서
그려내는 도상화 능력은 솜씨로,
재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면 중간 쯤 박힌 나비는
불쑥 의義자의 중심부를 향해
직진한다. 더듬이로 문자에
가닿는다. 문자의 내부로 파고 들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지는데 그 아래
의義자를 이루는 부수이자 획 하나에는
꽃문양이 박혔다. 나비는 그 꽃을
향해 돌진한다. 새와 나비만큼이나
독창적인 글자를 부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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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고 두툼하고 더없이 대충 그어놓은
획들은 중후한 덩어리감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진한 검정 색으로
임금 왕王자를 쓰고 그 아래 문자는
부드럽고 연한 색조로 깊게 침윤해서
칠했다. 각 획들이 저마다 제각기
놀고 있으면서도 희한하게 붙어 있다.
나뭇잎이기도 하고 뾰족한 형상이기도
하고 나무토막 같기도 한 것들이
떠돌면서 우연히 만나 문자를 힘겹게
가설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각각의
획들이, 선들이 공중 부양하면서
춤춘다. 희희낙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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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상과 문자의 독창적인 구성과
함께 이 그림의 백미는 거듭 말하지만
종이 속으로 깊게 번져나가면서
이룬 색채의 층이 자아내는 묘한
맛이다. 특히나 녹색의 처리가
압도적인데 화면 상단에 자리한 두 마리
새의 몸통을 부분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녹색과 하면 중앙에 자리한
문자를 지시하는 선/면을 채우고 있는
신선하고 맑은 녹색은 서로 화답하면서
화면 전체를 생동감 있게 돌변시키는
마술적인 힘을 발휘한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문화, 이미지와 문자가
이렇게 공존하고 상호 접속된다.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가 불가피하게
터져 나온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