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도
문자도 ‘의義’자 그림의 경우는
‘의’자의
넓은 획 속에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결의하는 장면을 곁들여 그리거나
복숭아꽃만 그려 ‘도원의 결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비·관우·장비가
서로 의형제를
맺고 보국하며,아래로는 백성을
편하게
하자면서 같은
날 죽기를
맹세하는 『삼국지』의
한 장면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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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하면 두 마리의 새도 등장하는데,
이는 서로 어우러져 지저귀는 한 쌍의
물수리로부터 연원한다. 이른바
‘관저화명關雎和鳴’이라는 화제의 시,
즉 “운다 운다 물수리 섬가에 물수리
아리따운 아가씨 사나이의 좋은 짝”이라는
시가 그것이다. 보다시피 남녀 간의
애정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녀의
의리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의’자가 지닌 여러 이야기를 상징적인
도상으로 전하는 것이 이 문자도의
핵심적인 기능이지만,
이미
그림
자체로
충분한 회화성을 보여준다는
점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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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딱 떨어져 보이는, 정돈감
있는
화면 구성이 눈에 들어온다.
문자도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매력적인 장식성을 아우르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몸을 틀어 서로를 마주 보는
한 쌍의 새를 상당히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마치 고구려고분벽화에 등장하는
현무의 자태처럼 존재한다. 이 새들이
착지하고 있는 발의 묘사가 살아있다.
안정적인 착지를 보여주는 이 발의
묘사가 그림 그린 이의 관찰력이 상당한
수준임을 방증한다. 새의 머리 또한
생동감 넘친다. 몸을 교차시키고 있는데서
이 새의 의미를 보게 되고 이들의 애정을
떠올리게 된다. 한 몸이 아닌 별개의
고립된 몸으로 태어난 것이 모든 존재의
운명이지만 그 몸을 넘어서서 서로 결합하고
끝내는 하나가 되고자 하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도 또한 모든 존재들의 소망이다
이들 새의 몸통과 다리로부터 덩어리를
이루며 아래를 향해 거침없이
밀고
나가듯이
쓴 의義자가 상당히
활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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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먹색으로 칠한 문자의 획 내부에는
꽃모양과 복숭아, 석류, 책갑 등이
그려졌는데 의義자를 이루는 마지막
삐침의 기세가 대단하다. 새의 몸통의
깃털문양과 그 아래 책갑과 함께
그려넣은 잎, 그리고 하단에 길게
떨어지는 획이자 잎이기도 한 것의
배치로 인해 서서히 아래를 행해
내려오는 모종의 시간의 흐름, 기세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문자 내부와
외부의 것들이 약동하듯 서로 일렁거린다.
글자의 획 안에 씨앗처럼 자리한 복숭아와
석류의 묘사는 무척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보여준다. 특히 복숭아
꼭지 부분의 설채와 석류의 몸통 표현
등은 대단한 솜씨를 만나게 한다.
더없이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