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도

만병과 그 안에 꽂힌 모란꽃, 그리고
책갑에 쌓인 책과 필통과 붓, 종이
등이 놓인 책거리 그림이다. 이 그림은 화면
정중앙에 커다란 화병/만병을 중심으로
놓은 구도다.

책/경전은 우주에 가득 한 진리의 생명을
문자 언어로 압축한 것이자 공부를 많이
해서 출세를 하라는 소망도 있고 벼슬,
권력, 지식의 욕구를 반영하는 책은 길상적
이미지다. 만병과 책갑과 책 등이 자유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 책거리 그림이라
여기에는 항상 만병과 서책이 공존한다.
필통에는 물을 상징하는 육각형 무늬
육각수문이다. 거북의 등껍질 문양이기도
하다. 꽃, 만병, 상 등 크게 3등분으로
나누어지면서도 이것들이 모여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진다. 만병 중간에는 매듭을
맺은 띠가 돌려 있다. 매듭은 완성, 공경,
장엄을 의미하며 매듭을 맺음으로써
만병을 영화시킨다. 감싸는 것은 삼가
황공히 여긴다는 뜻도 있고 감싸는 포包
자가 자궁에 감싸여 있다가 세상에 태어난
생명은 부모에게 안겨 자란다는 뜻도 있다.

신과 부처에게 바치는 공물은 보통
무언가로 감싸야 한다. 그것은 매우
성스러운 행위다. 따라서 만병 역시도
그러한 종교적 대상, 신앙의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매듭은 과장된 볼륨이
느껴지는 병의 표면을 감싸고 있다. 이
그림에서 백미는 단연 상단에 자리한
풍성한 모란꽃의 묘사다. 이렇게 풍성하고
잘 그린 모란꽃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마냥 탐스러운 덩어리로 만개하고 있다.
꽃잎을 그린 활달하게 그어나간 선들,
속사로 그려나간 선이 머뭇거림 없다.

무엇보다도 모란꽃을 보여주는 연분홍
색채가 너무 관능적으로 아름답다.
연한색채가 귀족적인 기품을 품고
있기도 하다. 하단에 자리한 탁자는
소반과 유사하다. 검정으로 단호하게
칠한, 다소 엄정한 이 처리는 그 위의
표현과는 다른 어법이다. 영기문/여의두문
문양을 연상시키는 다리가
재미있는데 풍성하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 상단의 모란꽃과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이처럼 상/나무도 영기에
가득차서 풍성하게 터질 듯이 밀고
나온다. 사물에서도 생명력을 느끼고
기운을 포착하는 시선이다. 아래로부터
밀고 올라가 모란꽃으로 폭발하는
생명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