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

당초문과 꽃문양이 인쇄된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으로 화면 상단에
두 마리 새가 있고 하단에서
중심부를 가득 채운 국화꽃 화분이
흥미롭다. 온화하면서도 묘한
감성으로 충만하다. 전체적으로 너무나
화사하고 부드럽다. 몽롱하다는
느낌도 든다. 국화가 가득 피어난 어느
오후의 시간이 느리게 지나고 그 순간
새들이 날아든 상황이다. 정적인 구도,
얌전하고 소박한 묘사, 무리 없이
게 가꾼 그림이라는 생각이다. 특별한
개성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기발한 상상력이 번득이지도 않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차분하고
담담하게 사물을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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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레 윤곽선을 그은 후에 채색을
입혔다. 네 송이 국화가 저마다 다르다.
노랑과 빨강을 섞어 번지게 칠한
데서 연유하는 맛이 신선하다. 바탕의
문양과 그 위로 채색한 것이 겹치면서
이룬 이중의 투명한 화면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흐릿한
담채의 분위기 있는 색채가 조심스레
설채되었고 국화꽃이 만발한 한 순간,
그 꽃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는 새의 모습이
정확하게 표현되었다. 다소 도식적인
선의 이어짐이지만 그 나름 매력이 있다.
특히 상단에 있는 줄기의 흔들리는 처리는
국화꽃이 정면에서 본 것처럼 납작하게
그려져 있다. 중심부는 노랑으로 그리고
밖으로 빨강을 칠해 번져
놓은 국화꽃 처리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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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조심스레 굴곡을 만들며
이어지는 줄기와 잎사귀를 그린 선이
조금은 기력이 없어 보이면서도
나름의 성격이 있다. 특히 상단에
자리한, 새가 앉아있는 줄기가
늘어진 부분의 선 맛은 분명 기세가
있다. 그 선의 굴곡은 새의 날개 짓,
비상을 더 효과적으로 보완해주고
있다. 바탕 종이의 문양과 선이 그대로
화분의 내부를 만들어 보인다. 하여간
묘한 독창성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이런 그림을 통해 조선시대 화훼화의
수준 높은 경지가 민화에서도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동시에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서 사생하듯 그려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배경이 사라진
상황에서 오로지 단독으로 설정된
화분과 새로만 이루어진 단출한 풍경에서
시정어린 한국 자연의 한 정취를
홀연 접촉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