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
우측으로 꺽어서 모서리를
타고 올라간 나무의 구성이
화면을 자연스레 양분하면서
또 다른 풍경을 안겨준다.
압권은 이 나무처리지만 동시에
그 위에 앉은 두 마리 새와
너무나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물든 꽃과 잎 역시 뛰어나다.
이 붉은 색과 먹선 만으로도 풍부한
색채 감각을 일구고 있다. 여기서
꽃과 잎의 구분은 다소 애매하다.
가늘고 예민한 선으로 잎맥을 그린
나뭇잎과 달리 전체를 정성껏,
밀도 있게 칠한 붉은 색으로 도포된
부분은 잎과 꽃을 동시에 보여준다.
먹색과 붉은 색이 이토록 조화 있게
구사되고 있다는
사실이
다소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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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하고 깔끔하게 처리한 꽃,
잎과는 달리 거칠고 굴곡 있게
처리한 나무의 질감이 흥미롭게
표현되었다. 그 위에 나무나
가는 나뭇가지에 두 다리를
위태롭게 얹혀놓은, 그 가늘고
가는 새 다리가 너무나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갈필로
새 내부의 몸통이나 꼬리 부분을
표현한 것을 보면 이 작가가
얼마나 독창적인 솜씨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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꺽인 나뭇가지 아래로 원경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산과 정자의 묘사,
그리고 버드나무가지에 앉은
두 마리 새의 도상화 또한 일품이다.
역시 갈필로 도식적으로
표현된 산의 내부를 긁듯이 그려
질감과 내부를 채운 맛이 좋다.
산의 외형을 그린 후 사선으로
양 방향으로 붓질을 빗금처럼
주어 입체감을 주는 방식이다.
상단에 있는 나무에서 붉은 꽃잎이
흡사 빨간 색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같기도 한데 이것들이 눈송이처럼
낙하한다. 화면 바닥에 용의
형상처럼 긴 연기를 내뿜으며 기차는
달린다. 진하고 어둡게 칠한 기차
칸과
지붕 처리도 재미있고 그 앞에
차행車行이란
문자가 있는 깃발이
창과도
같은 대위에
걸려있다.
기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일제강점기
시절에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
연대가
높지 않지만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는 민화다. 하단에 자리한
산봉우리와
나무 표현도 기발하고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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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이 작가는 특정 대상을
자기 식으로 형태화 하는 데서
우월하다. 그것은 주어진 사물/대상의
본 형태와 그것을 보는 자신의 지각
사이의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그 둘 사이의 긴장감과 갈등이 그림을
이룬다. 가까이에서 본, 나무에
앉은 두 마리 새와 그 아래, 저 멀리
밀려나 있는 산과 나무, 그리고 정자와
그 사이에 자리한 또 다른 새 한 쌍,
달리는 기차가 한 공간에 걸려들었다.
그 모든 것을 주어진 화면에 나란히
포개어놓으면서 깊은 공간감을
창출하고
있는, 해결하려는 작가의
지혜가 번득인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