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
꽃이 핀 나무와 한 쌍의 새와
나비가 어우러진 봄날 풍경이다.
따스한 봄날 가득한 날
음양이 화답하고 만물이 기운차게
소생하고 있다.
모든 게 활기찬
시간이고 계절이다.
먹색과
먹선으로만
이루어진 수묵담채화다.
매우 소박한
수묵담채화로서
무엇보다도 먹의 부드러운
색조와 소박한 처리가 편안하게
다가온다.먹의 농도와 필선의
맛이 절묘하다. 지그재그로 올라오는
나뭇가지의 구성,
가지에 매달린
잎사귀와 꽃, 그리고 나무에
앉은 새 두 마리와 수직으로
내려오는
나비의 형태가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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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를 보면 자연계에
자리한
무수한
생명체들을
제각기
형상화해내는 놀라운 솜씨를
만난다.
자연에서
살며 그 생명체들과
공생의 관계, 친연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과정에서
연유하는
깨달음과
관찰력으로 인해
가능한
경지고
그로인해
나온
형상화다.
이 형상화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밀어내는 시선이나
재현의
욕망을
우선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인간과 대등한
생명체로서 어떻게 동일한
생의 욕망을, 자연의
이치를
공유하고
있는가를
찾아내는
차원에서
작동한다.
그것은 그림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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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나비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를
향해
날아가고
서로를 찾아 나선다.
이를 지켜보는 두 마리 새는 각기
화면
양 측면에서
마주하고 있다.
화면 상단의 모서리를 박차고
아래를 향해 마치 다이빙을
하듯이
날개를 확 펼치고 있는 나비의
자태가 이 그림에서 가장 재미있다.
전체적으로 엷은 먹색의 색감이
매력적이고 농담 조절 역시
능하게
처리하고 있다. 상당히 절도
있는
선으로
그은 각 형상의
윤곽선이
두드러지는데
따라서
이 그림은
수묵으로 그린
드로잉의
한 뛰어난
경지를 보여준다.
화면 상단
좌측에는
대련으로
짧은시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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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선원춘색만 不變仙源春色晩
양안홍도신결자 兩岸紅桃新結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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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선원(무릉도원)에
봄빛은 늦게 오고
양 언덕에 붉은 도화는
새로 열매를 맺는 구나
먹으로만 드로잉 한 이 국화꽃은
여러 개의 줄기를 화면 하단
좌측에서부터 시작해서 상단까지
쭉쭉 밀어내어 그렸다.
어눌하면서도 상당히 절도 있게
흥미로운 선으로 가지를 그렸고
그로부터 국화꽃과 잎사귀가
환하게 피어나고 있다. 나란히
위에 배열된 국화꽃 위로
사방으로 벌어진 잎이 그려졌다.
먹선으로 이루어진 이 드로잉의 맛,
선맛이 좋은 그림이다. 급하게,
대충 그린 것 같으면서도 유심히
들여다보고 무척 공들여,
신중하게 그린 그림이다. 가지에
매달린 국화잎은 제각기 다양한
형태를 지니면서 실제 국화에서
연유하는 모습을 반영한다.
마치 사군자의 난이나 국화 그림을
부단히 연상시키지만 그러한
사대부문인들이 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림의 맛을 안긴다.
사실 비교가 되지 않는 그림일 수도
있겠다. 문기 짙은 선비들의
정신세계나 그들이 표방하는 이념의
도상화가 사군자라면 이 무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은 그런 이념성보다는
국화 자체의 아름다움, 그 생명체의
본질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진 듯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군자 국화그림과는
자유분방함과 유머, 해학,
관찰력 등에서 놀랍기만 하다. 마치
국화를 그리기위한 밑그림,
혹은 스케치를 통해 대상을 간파하려는
시도의 결과물 같기도 하다.
진한 먹을 찍어 쭉쭉 그어나간 데서
대담함인지 무모함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을 만난다. 그저 내가 본 대로
보이는 대로 그려보겠다는 의지의
직진성이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기울어지게 네 개의 선을 긋고 다시
이 선으로부터 수직으로 올라가는
다섯 개의 선과 우측으로 기울어진
두 개의 선이 출현한다. 그리고
여기서 국화와 잎들이 신나게 피어난다.
그 힘이 넘쳐서 줄기 밖으로 까지
꽃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엄청난
생명력과 기운으로 충만한 그림이다.
화면 상단에는 국화꽃 네 송이가
그려졌는데 좌측에서 우측방향으로
국화잎이 불어나면서 종국에는
가득 만개한 국화꽃을 만들고 있다.
시간의 추이과정에 따라 국화가
피어나는 순서를 기록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국화의 묘사보다도 잎의 처리가
더 재미있다. 윤곽선으로 거침없이
잎의 형태를 그린 후 그 안쪽에 다소
작게 그려진 잎맥이 좋다. 활달하고
소박하지만 은근한 매력을 지닌
수묵화, 먹선이다. 선의 강약과 변화,
이어짐과 사라짐 등이 매혹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소박하면서도 유연함을
함축하고 있고 본을 따라하는 듯하면서
파격을 내지르고 있다. 이 그림은
결국 국화 자체를 그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꽃이 지닌 생명력, 기운을
가시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민화를 그린 이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세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세계가 머금고 있는 비가시적 힘,
영적인 기운과 힘을 어떻게 그림
바깥으로 유출시킬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고 보여 진다. 그런데
이런 문제의식은 20세기
현대미술이 고민했던 바이기도
하다. 하긴 모든 미술은, 이미지는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가시적
세계에서 비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려는
시도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