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조도

화면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해
밀고 올라오는 기운이 드세다.
공작새와 나무를 거쳐 산으로,
하늘로 이어지는 구도다.
꿈틀거리는 선으로 형태를 잡은 후
그 윤곽선을 슬슬 풀어 내부를
채우고 입체감을 주고 있다.
좌우대칭의 구성이지만 그것을
엄격하게, 경직되게 가설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게 얽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단에 자리한
한 쌍의 공작새, 바위에서 밀고
나오는 나무, 나무에 붙은 꽃과
매달린 포도 그리고 상단에 자리한
한 쌍의 산과 구름이 모두
그런 배려에 의해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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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는 두 그루의 나무는 지그재그로
교차하면서 그 사이로 아득한
공간을 투사한다. 나무줄기에 붙은
꽃봉오리들이 마치 바닷가 바위에
달라붙은 굴처럼 가득하다.
좌측 하단의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꽃나무와 우측에서 좌측으로
기울어진 포도나무가 얽혀있다.
포도나무 위에 다람쥐가
올라가있고 포도나무 잎사귀가
마치 나비처럼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다. 우측에서 느닷없이 뻗어
나온 6개의 넓적한 잎사귀는
나비가 되어 출렁인다. 그리고 그
한 쌍의 잎들이 또 한송이의
포도알을 느리고 있다. 포도나무
잎의 내부에 그려놓은 작은 선들은
새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논에
심어 놓은 모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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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위에 올라가 앉은
다람쥐는 쥐처럼
그려졌지만 그 조심스러움과
신중함으로 늘 예민해있는
다람쥐의 행동을 세심히
관찰한 결과다. 포도 알로
가기 전에 최대치의
긴장을 모으고 있는 다람쥐의
발 묘사가 모든 것을 지시한다.
대단한 솜씨다. 화면 상단에 솟은
두 개의 산은 깊고 높은
산임을 강조하기 위해 중간
부분부터 감아 올라가는
운무 표현과 함께 먹 선을 짙게
한 후 흐리게 풀어주어 깊이감을
선보인다. 하단에는 특이한
도상화를 연출하고 있는한 쌍의
공작이 한 몸인 듯 붙어
좌우대칭을 이룬다. 이 새의
묘사는 기발하고 독창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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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집을 연상시키는 포도의 묘사,
나무를 감싸며 피어나는 꽃의 처리,
포도나무와 꽃나무의 몸통
표현의 상이성 등으로 인해 이
그림은 각 대상의 묘한 도상화와
맑고 담백하면서도 묘한 느낌을
유발하는 색과 예민한 선에서
주목된다. 이러한 담담한 그림,
소박한 그림이 더없이 감동적이다.
이는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마음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착하고 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이에 의해 그려진 진솔한
그림이 주는 감동 말이다. 오늘날
현학적이고, 난체 해야 하는
현대미술이 진즉에 잃어버린
그 순결하고 투명한 마음 말이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