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무난하지만 무척이나
단아하고 정갈한 책거리다.
우선 색채가 기품이 있다.
연하고 맑고 상큼하다.
화면 중심부로 모여든
여러 기물이 힘껏 제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려 애쓴다.
화면 깊숙한 곳,
그 정중앙에 위치한 둥글고
큰 백자항아리에는
매화가 꽂혀있다. 매화 마냥
치솟은 것은 두 개의 붓이다.
검은 먹을 머금은 붓들은
도열하듯, 탱탱하며 긴장감 있게
서서 곧 써야 할 글을
앞두고 있는 자기 존재감을
경건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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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담채로 그려진
나무 처리와 간결하게 마감한,
탐스럽게 핀 매화가 특히 좋다.
나뭇가지는 일획으로,
한 순간에 그려낸 듯 한데
농담 변화가 무쌍해서
나무의 표면 질감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사실 이 처리는
그림 그리는 이가 자신이 먹을
다루는 솜씨를 드러내고
싶다는 욕망 아래 풀어져
나온 듯하다. 그만큼 능숙하고
자유로운 표현기법이다.
모든 대상들은 특정 방향을
지시하며 고지식하게
자리하고 있다. 저마다 반듯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문을 숭상하고 모든 것이
그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여기에는 입신양명의
욕망도 깃들어 있다.
보는 이쪽으로 기울어져
내려온 책갑, 붓과 먹 등이 담긴
연상과도 같은 상자가 있다.
한편 수직으로 세워둔
붓 두 자루와 끈으로묶인
두루마리는 하늘을 향해 서 있다.
병과 꽃, 붓과 두루마리는
기원의 의미를 지니며
수직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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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성인의 말씀이 담긴
결정인 책은 산 자들 쪽으로
가파르게 경사져 내려온다.
이 이질적 시점의 교차는
조선 민화의 핵심적인
매력이다. 정교하진 않지만
편안하게 그려나간
자취 속에서 상당히 능숙한
솜씨를 만난다. 특히
백자항아리의 외곽을 이룬
저 단호한 선, 윤곽선 처리는
대단한 선 맛을 안겨준다.
화면 곳곳에 자리한 영기문과
함께 만발한 매화는
번성하는 기운과 왕성한
생명력으로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매화 향기와 먹 향기,
그리고 오랜 책에서 풍기는
눅눅하면서도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가
어우러져 있는 공간을
후각적으로도 충분히
자극하고 있는 그림이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