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도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산신으로도
여겼다. 영물뿐 아니라 산신의 위상으로
까지 호랑이를 신격화한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그래서 호랑이의 기운이
신성하다고 믿으며, 호랑이를 신기를
가지고 있는 동물로서 우리를 보호해주는
산신, 산신령과 같이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우리나라에서 산신은 주로 호랑이나
백발노인으로 등장한다. 이 둘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호랑이를 따로
산군이나 신령, 산신령이라 불렀다.
예를 들어 호랑이가 엎드린 자세는 산신의
신지神知를 받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는
사려 깊은 모습의 형상화이다. 그러나
도교의 유입으로 인해 산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좌정되면서 호랑이는 산신의
사자나 심부름꾼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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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상당히 정교하게 그려진
신선도다. 완성도가 높고 전체적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지팡이를 든 산신이 호랑이와 함께
앉아있는 이 그림에서는 신선의 의복 처리,
묘사가 특히 눈에 띈다. 산신의
오른쪽 팔과 함께 호랑이가 머리를 밀고
나온다. 일본 민예관에 소장된 산신도와
흡사하게 호랑이와 신선의 몸이
교차해있다. 이는 산신이 바로 호랑이였음을
일러준다. 삼신할아버지와 호랑이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이처럼
호랑이 몸에서 의인화된 산신이 탄생한다.
산의 일체를 관장하는 자연의 주인인
산신의 신체가 호랑이와 함께 또는
하나로 표현되는 이유다. 이 그림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호랑이의 표현이다.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처리된 눈동자는
이는 호랑이의 분노를 보여주며 경계가
극에 달한 것을 상징한다. 상대를 제압하는
호랑이의 강렬한 눈빛은 모든 질병이나
악귀를 내쫓는 부적의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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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처럼 방사되는 눈빛으로 모든 삿된
기운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
눈 역시 ‘전신사조’ 따라 그려졌다.
전신傳神을 강조한 고개지는 그의 화론에서
무엇보다도 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사람을 그리는 데
어떤 때는 몇 년 동안이나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사지가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은 본래
묘처妙處와 무관하니, 정신을 전하여
인물을 그리는 것은 바로 아도阿道 가운데
있다.”라고 답했다 한다. 여기서 아도란
당시의 방언으로 ‘이것’이라는 뜻으로 바로
눈동자를 가리킨다. 사람의 얼굴뿐만 아니라
호랑이를 그리는데 있어서도 눈, 눈빛의
묘사는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호랑이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을 크게 벌려 울고 있다. 모든 삿된 것을
물리치는 소리다. 또한 혀를 길게 내밀 수
없으므로 입을 가능한 길고 크게 과장하여
혀가 길게 보이도록 한다. 화면 좌측으로는
깊은 계곡이 벌어져있고 그 아래 두 명의
시중이 서있다. 공양을 하는 중이다.
두루마리 형식의 이 그림은 사찰 산신각에
걸려 벽화를 대신했을 것이다.

(글. 박영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