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보편적인 책거리 그림에 등장하는
여러 기물들이 편재해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기이하게 자리 잡은, 마치
홀바인의 그림<대사들>에 등장하는,
왜상을 일으키는 해골과도 같은
이미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무척 묘하다.
아마도 돌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먹선을
돌리고 번지기 하여 주름을 잡고 입체감을
살렸는데 꿈틀거리며 기어 올라가는
이 자태가 대단히 흥미롭고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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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응축한, 산이 쪼개진
돌의 영원성, 영험성을 가시화하려는
지도 모르겠다. 돌은 장수, 불변, 침묵,
불사 등으로 굳건하게 자리하는
상징이다. 개다리 소반위에 올라간
것들은 접시와 과일, 책갑과 책,
부채, 포도 등이다. 주변으로 붓과 먹,
두루마리 등이 포진해있다. 장수와
다산, 학문 숭상, 벼슬아치가 되고 싶다는
욕망 등으로 가득하다. 개다리소반의
다리와 부채, 그리고 포도의 묘사가
더없이
흥미롭다. 이 개다리의 직선은
단호하면서도 강렬하다. 그리고 진한
먹색이 개다리소반 위에 있는 접시와
부채손잡이를 이룬 검은 색과 함께
중후한 무게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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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색채는 차분하고 아름답게
포진해 있다. 사선방향으로 내려오는
붉은 색 계열의 물건들로 인해 리듬감
있는 화면이 생겨나고 있고 수평과
수직이 엇갈려가면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또한 물감의 번짐을 이용하는 기법과
그 효과를 잘 살리고 있다. 동일한
대상들을
소재로 한 책거리지만 같은 포도,
책갑 등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개별성으로 빛나는
개성이 희한하게
묻어 있는 것이 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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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한 내용을 기술해도 저마다의
억양과 말솜씨에 따라 달리 전해지듯
민화도 그렇다. 유사한 구도
안에서도 이처럼 기이한 형태를 밀어
넣어
불가사의한 조형을 기어이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괴석의 주름처럼
돋보이는
것이 또한 부채 처리다. 먹의
농담을
주어 입체감을 훌륭히 살려냄과
동시에
풍성하고 강한 부채 살과 깃털의
맛을
매력적으로 전달한다. 칼질을 해둔
과일이나 접시 너머로 번져 나오는
포도의 왕성한 생명력을 가시화하는
솜씨 또한 만만치 않다. 그 표현이
재미있으면서도 책거리의 도상 또한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 그림이다.
(글. 박영택)